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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차를 마셔요, 우리”를 읽고 써 봅니다

이해인의 시, “차를 마셔요, 우리”는 전체적으로 차분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의 글을 좋아하기에 처음 읽어봤음에도 불구하고 시의 흐름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를 마시는 것은 시간을 마시는 것이다

차를 마시는 데에는 두 가지의 행동이 존재합니다. 차를 우려내고, 차를 마신다. 차를 우려내는 것은 차와 물의 조화를 통해 적합한 정도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맞는 차를 우려내는 데에도 많은 시도가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차를 대접하는 것은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지요. 그 사람에 맞는 차를 우려 준다는 것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수많은 시도를 한 만큼 많은 시간을 함께 하였다는 것을 뜻합니다. 차를 마시는 동안의 침묵에도 어색함이 없고, 오히려 침묵을 통해 서로를 느끼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마음의 창을 활짝 열고

산을 닮은 어진 눈빛과

바다를 닮은 푸른 지혜로

치우침 없는 중용을 익히면서

언제나 은은한 미소를 지닐 수 있도록

함께 차를 마셔요



중용(中庸)이라는 단어는 위에서 언급한 차를 우려내는 행위와 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중용을 익혀나가는 것이 차와 물의 알맞은 정도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굳건한 산과 모든 것을 포용하는 바다는 자연을 대표합니다.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법을 아는 사람은 그 마음도 자연과 같을 것입니다.

언제나 은은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여유가 있는 사람입니다. 매일 바쁘게 시간에 쫓겨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사치라 불리는 그것이지요. 차를 마시는 것은 시간을 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일상일 뿐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대단한 것도 아니건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어려운 일로 여겨지곤 함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는 어디에나 있지만 무위(無爲)하다

특히 옛 수행자들은 차를 즐겨 마시며 이런 일상 속에서 득도를 추구하곤 하였습니다. 이 시의 구성을 살피면 마치 한 구도자가 차를 통해 얻은 진리를 후배에게 이끌어 주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마지막 연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피리 소리’가 하나의 깨달음을 표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는 사랑일 수도 있고, 다른 무언가 일 수도 있습니다. 깨달음이 무엇이건 간에 진리는 누가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고, 그것을 찾아내고자 하는 노력이 바로 차를 마시는 행위와 대응합니다.

‘다도(茶道)’라 불리는 예법이 있습니다. 그 복잡한 형식을 보면 격식에 매달려 본질을 잊고 있는 느낌입니다. 차를 마시는데, 무슨 방법이 필요하겠습니까? 그저 마음을 다해 우려서 마음을 내려놓고 마시면 그것이 다도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옳고 그름을 떠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스스로도 자연스럽게 맑아지기 마련이라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피리 소리는 항상 그대 마음에서 울리고 있습니다. 귀를 기울이는 노력만이 필요할 뿐이죠.



2014/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