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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

지옥地獄

아약향지옥我若向地獄
내가 만약 지옥에 떨어지면

지옥자고갈地獄自枯渴
지옥은 저절로 없어지며
내가 악업이 많아 죽은 후에 만약 지옥으로 향하게 되면, 그 지옥은 저절로 사라져 내가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옥地獄

지옥이란 말은 불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종교란 개념의 틀이 생기며, 악한 ‘놈’들이 죽어서 가야 할 곳이 지옥으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현재와 같은 징벌적 의미의 지옥관(地獄觀)이 형성된 것은 기원전 6세기경 시작된 조로아스터교(불을 섬긴다 하여 배화교(拜火敎)라고도 함)부터 입니다.(기원전 1,200년 무렵부터라는 설도 있음.)
그것이 불교와 기독교 등 세계적 종교에 도입된 것인데, 지옥의 실재(實在)는 별개의 문제이고 종교에서 지옥의 보편화의 동기가 궁금합니다.

무려 기원전 8,9세기 그러니까 거의 3,0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최초의 서사시인 호메로스(Homeros: BC 800?~BC750)가 쓴 오디세이(Odyssey)에 묘사된 지옥의 효시에 해당하는 문헌들을 보면, 지옥은 죄를 지은 사람이 가게 되는 땅 속 깊은 곳의 어둠침침하고 음산한 곳,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도 왕래할 수 있는 장소 정도의 개념이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집에 빠지지 않고 수록되는 이야기를 상기해 보겠습니다.

에우리디체는 고대 그리스 신화의 인물로, 가장 위대한 음악가 오르페우스의 아내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에우리디체가 죽어버렸지요. 그러자 너무나 상심한 오르페우스는 살아있는 자로서 저승으로 아내를 찾으러 떠납니다. 천신만고 끝에 저승에 도착한 오르페우스는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하고, 이 노래에 감동한 저승의 신이 에우리디체를 오르페우스와 함께 돌려보내줍니다.
단, 이승에 도착할 때까지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라는 조건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승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오르페우스는 그만 에우리디체를 향해 뒤를 돌아보고 맙니다. 그러자 에우리디체는 그만 저승으로 날려가 버리지요.
결국 이승에 돌아온 오르페우스는 눈물로 세월을 보내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이처럼 가슴 저린 소재를 예술가들이 놓칠 리가 없습니다. 같은 내용을 다룬 몇 가지 오페라 중 독일 태생의 글룩(Christoph Willibald Gluck: 1714∼1787)이 작곡한 오페라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Orfeo ed Euridice)가 대표적입니다. 극의 내용에 부합하듯 처절한 아리아들이 많은데, 그 중 ‘나의 에우리디체를 돌려주세요’라는 곡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더욱이 이 오페라는 공연할 수 있는 대본과 악보가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초기의 오페라 중 최고의 걸작입니다. 제가 오페라를 워낙 좋아해서 혹 지나치게 오페라를 자주 거론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현재 우리 귀에 익숙한 성악곡들은 대부분 오페라에 나오는 곡이라 여기셔도 될 정도로 우리 귀에 친숙한 것이 오페라입니다.

흔히 홍난파의 ‘봉선화’, 최영섭의 ‘그리운 금강산’을 ‘가곡’(歌曲)이라고 부르는데, 엄밀하게 보면 가곡이란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겨울 나그네’ 등에 있는 독창·중창 등을 가곡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가곡은 이런 서양 음악에 그 음율의 형식만 빌린 것입니다. 가곡(歌曲)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충실하자면, ‘타령’과 ‘창’이 오히려 우리의 가곡이라고 불려야 맞습니다.

기분좋게 옆길로 샜다가 다시 음침한 지옥으로 오겠습니다.
결국 지옥은 종교가 활성화 되면서 ‘너, 잘 못 믿거나,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권선징악적 교훈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양적· 질적으로 다양해진 것이 분명합니다. 다시 말해 종교가 발생되기 이전인 샤마니즘, 애니미즘 등에 매달려 있던 우매한 시절에는 오히려 징벌 개념의 지옥은 없었다는 말입니다. 극락이나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초지종이야 어찌 되었건 종교가 지옥과 극락을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가톨릭에서는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연옥(煉獄)이라는, 지은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는 정거장을 배려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옥하면 어느 종교보다 불교에서 상정해 놓은 것이 가장 다양하고 끔찍합니다. 불교에는 크게 8대 지옥이 있고, 다시 죄목의 경중에 따라 각 8대 지옥마다 다시 16개의 지옥으로 나눠지고, 거기에 대지옥 소지옥 등 136가지의 지옥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지옥론(地獄論)에 있어서 만큼은 불교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자랑할 만합니다.

<천수경>에서도 도산지옥 화탕지옥을 거론한 후에, 다시 지옥에 가면 제발 그 지옥이 없어지게 해달라고 관세음보살님께 부탁하는 이유가, 불교에서의 지옥은 정말 가서는 안 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