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금칭송서귀의我今稱誦誓歸依 내가 지금 대비주를 칭송하며 귀의하오니 소원종심실원만所願從心悉圓滿 원하는 일 마음대로 원만하게 이뤄지이다 |
내가 지금 크고 귀한 신묘장구대다라니라를 칭송하며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하니, 내가 원하는 일들이 마음 따라 아주 잘 이루어지길 간절히 원한다는 뜻입니다. |
귀의歸依
귀의는 불교의 근간을 이루는 단어이니, 의미를 잘 새겨두실 필요가 있습니다.
부처님도 재세(在世)시 제자가 되기를 청하는 이들에게 귀의의 다짐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절에서 법회 등 의식(儀式)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삼귀의(三歸依)이고, <천수경>도 마무리를 삼귀의로 하고 있을 정도로 귀의는 불교신앙의 근본인 것입니다. 또한 부처님 전에 올리는 조석 예불문의 ‘지심귀명례’의 귀명(歸命)도 귀의와 같은 뜻입니다.
귀의는 ‘내 모두를 맡기고 의지한다’는 뜻인데, 심정적으로는 기독교인이 하나님의 뜻에 모든 것을 바치고 맡기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기독교는 신神에 의지하는 것이고, 불교는 내 마음속의 부처님께 의지하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그런데 <천수경>에서는 귀의의 의지처를 관세음보살에 두고 있습니다. 불교의 심오한 부분까지 들어가면 관세음보살도, 내 마음 속의 ‘자비심’과 동일한 존재라는 등식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어찌 모든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런 깊이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불교의 믿음에 확신이 서지 않고 의심 나며 때론 마음이 마구 흔들리며 세상의 어려움에 대책이 서지 않을 때, 무엇인가 의지의 대상을 찾고 그것으로 다시 용기를 얻어 최선을 다해 어려움에서 벗어난다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겠습니까. 그런 믿음과 의지가 바로 귀의의 뜻이며, <천수경>에서는 그 대상을 관세음보살과 관세음보살의 신비스런 주문인 신묘장구대다라니로 설정해 놓은 것입니다.
나무(南無)도 귀의와 같은 의미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소원所願
제가 출가는 하였지만 아직 사미계를 받기 몇 달 전의 일입니다.
점심공양 후 법당을 청소하고 있었는데, 신도 한 분이 법당 안으로 들어서며 주위를 둘러보다 저를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행자 복장이 모습은 승복이되 색깔은 밤색으로 구별되어 있으나, 그 당시에는 정식 스님들과 같은 회색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신도는 저를 절의 스님들 중 한 사람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스님, 제사를 지내러 왔습니다”라는 신도의 말 “저는 아직 스님이 아닌데요, 제사와 같이 중요한 불공은 제사상도 차려야 하고 스님이 염불도 하고 축원도 해야 하는데요?”라고 답했습니다. 이에 그 신도는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간단하게 제물은 준비해 왔고, 실은 불공에 올릴 불전은 형편상 준비 못했습니다.” 라며 간곡히 부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로서는 제사상 차림을 핑계로 어떻게든 난감한 상황을 모면해 보려 했는데, 이게 쉽지 않게 되버린 것입니다. 더 최악의 상황은 불공을 올릴만한 스님들은 모두 출타 중이시라, 터이니, 저로서는 식은땀이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그 신도분과 타협을 하였습니다. 나는 축원은 해본 적이 없어 못하고 다행히 <천수경>과 <반야심경>은 할 줄 아니, 내가 부처님 전에 <천수경>을 읽으면 신도는 절을 하며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어 축원을 대신하고, 그 다음 위패를 모셔 놓은 영단(靈壇)에는 반야심경을 할 테니 나머지는 역시 신도가 알아서 하자고 말입니다.
또, 경을 읽을 때 틀리면 안 되므로 나는 책을 펴 놓고 읽을 것이니, 다른 스님들처럼 경도 못 외운다고 실망하지 마시라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신도 분은 좋다고 하시며 그럼 시작하자고 하였습니다.
저는 단정히 앉아 바로 이 천수경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목청 높여 독경하였는데, 잔뜩 긴장하여 어깨에는 힘이 들어간 채 목탁은 깨질 정도로 두들기며 간신히 독경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제삿상을 차려 놓은 영단에 <반야심경> 독경까지 마친 후 상을 정리하며 보니, 제사를 받는 영가의 사진이 아주 앳되고 예쁜 소녀였습니다. 제가 깜짝 놀라 “누구의 제사였습니까?” 라고 물으니 “18세에 죽은 제 딸이예요” 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스님, 염불 우렁차게 잘 하시는데요, 덕분에 어느 해보다 잘 지낸 것 같아 감사합니다.” 라며 공손히 합장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이런 뜻 깊고 보람된 불공을 한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