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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

선방편善方便

나무대비관세음南無大悲觀世音
자비하신 관음보살님께 귀의하옵니다.

아조득선방편願我早得善方便
바라오니 속히 뛰어난 방편 얻게 해 주소서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하며 바라는 네 번째 원은, 중생을 구제할 수 있는 뛰어나고 좋은 방편을 빨리 얻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선방편善方便

선방편의 방편은 이미 충분히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착할 ‘善’자가 앞에 붙었는데, 그 이유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방편은 선교방편(善巧方便)을 줄여 쓰는 말입니다. 목적을 이루는 방법도 동기가 순수하고 좋아야 [善] 하며 그 방법 또한 절묘해야[巧] 한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중생들을 깨달음에 이루도록 하기 위한 방편이 선량해야 제대로 된 방편이라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절에서 신도들이 원한다고 부적이나 운명 감정 등을 하는 것은 결코 방편이 아닙니다. 이 부분은 스님들만 노력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처음 포교에 나섰을 때 가장 난감했던 점이, 좋은 날짜를 택일해 달라는 것과 운이 좋은지 나쁜지 ‘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런 것 모릅니다’ 라고 해도 신도들이 도무지 그 말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스님이 자신을 무시하기 때문에 말을 안 해주거나, 너무나 운이 나쁘니 아예 말을 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신도들도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참 답답할 뿐이었습니다.

몇 년을 이 같은 문제에 봉착하다 보니 내 스스로 의문이 생겼습니다. 도대체 사람들은 어째서 이런 데에 집착하고, 정말 사람에게 정해진 운명이란 것이 있는가 하는 의문 말입니다. 그래서 아예 소위 점 보는 법을 혼자 배웠습니다. 사주팔자, 운명 등을 감정하는 전문서적을 쌓아 놓고 독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3년 쯤 공부하니 ‘감’이 잡히더군요.

그 후 다시 20여 년을 몇몇 특이한 신도들을 대상으로 표본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물론 해당 신도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신도 축원문 작성할 때 기재되어 있는 생년월일을 자료로 해서 말입니다. 그 결과는 반반이었습니다. 이 신도는 정말 운대로 가는구나 하는 경우와,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반반이라는 것입니다. 저의 역학(易學) 공부가 시원치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50% 라면 사실 별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이런 과정을 통해 저는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아, 참 용하게 잘 맞춘다’ 하는 점쟁이는 누구나 될 수 있다는 비법(?)인데, 내친 김에 밝혀 버리겠습니다. 상대가 운을 물어 옵니다. “아들이 원하는 대학 합격할까요?” 오늘은 내가 기분이 나쁘니 묻는 모든 사람에 대해 대답은 ‘나쁘다’로 정해 버렸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확률상 반은 정확하게 맞출 수 있습니다. 그러면 상대는 다음번에 또 다른 운을 묻습니다. “남편이 진급 될까요?” 이번엔 기분이 좋으니 오는 사람 모두에게 ‘좋다’라고 답해 버렸습니다. 역시 대충 반은 맞는 현상이 벌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계산을 해보겠습니다. 처음 100명 중 ‘나쁘다’로 맞춘 사람 50명, 그 50명 중 다시 찾아와 물었는데 ‘좋다’가 적중한 사람이 최소 25명은 됩니다. 도사(道士)가 만들어 지는 것은 지금부터입니다. 걸려든 이 25명은 필경 다른 많은 사람을 몰고 오게 되어있습니다.

솔직히 이 책을 보는 분들 중에 경험 있는 분들은, 점쟁이한테 친구나 이웃과 같이 가지 혼자 간 적은 거의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오는 숫자가 늘어날수록, 한번 소문이 나면 나머지는 어리석은 중생들이 다 나를 용하다고 생각하게끔 수치적으로 이미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인간의 심리는 자신에게 ‘적중된’ 경우는 잘 잊어버리지 않고 합리화까지 시켜주는 성향까지 있으니, 이거야말로 말 그대로 땅 집고 헤엄치기가 되는 셈입니다.

저의 이런 논리에 ‘그럼 나도 점쟁이 자격이 있는 걸까?’ 하고 의문을 갖는 분이 있을 겁니다. 저의 답은 지금부터라도 용기를 내서 해 보시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해보면 분명히 여러분도 용한 점쟁이가 될 수 있습니다.

결정적인 노하우는 틀렸다고 추궁 당할 때 절대 인정하지 말고, 상대에게“ 뭔가 나한테 속이는게 있었지?” 라든가, ‘분명히 태어난 시(時)가 잘못되어 제대로 운명을 감정 할 수 없었다’라는 식으로 역으로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점쟁이들의 속성이 그렇다는 말이고, 불교를 믿으면 무속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여 드린 말씀이지, 실제 이런 실험은 친구나 상대로 해볼 장난입니다.

스님 하면 으레 운명 감정의 전문가로 단정하고, 또 이 심리를 악용해 혹세무민하면서 이것을 방편이라 둘러대는 스님들이 있기에 해본 소리입니다.

<천수경>에서는 이런 중생의 마음을 알기에 관세음보살님이 베푸시는 구제의 방법은 이런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선방편(善方便)이라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