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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

십일면보살十一面菩薩

나무 십일면보살 마하살 南無 十一面菩薩 摩訶薩
십일면보살님께 귀의합니다

 

십일면보살十一面菩薩

이십일면보살이야말로 관세음보살의 중생 구제를 위한 다양한 현신(現身)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어려운 상황이나 그 수준에 따라 맞춤 구제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법화경> 제25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는 이를 32응신(應身)이라고 하며, 다음과 같이 상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무진의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어떤 국토의 중생으로 부처의 몸으로서 제도할 이에게는 관세음보살은 부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고, 벽지불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벽지불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고, 성문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성문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느니라.
범천왕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범천왕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고, 제석천왕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제석천왕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고, 자재천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자재천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고, 대자재천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대자재천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고, 하늘 대장군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하늘 대장군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고, 비사문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비사문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느니라.
작은 왕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작은 왕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고, 장자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장자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고, 거사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거사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고, 재상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재상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고, 바라문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바라문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느니라.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법한다. 장자, 거사, 재상, 바라문의 부인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부인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고, 동남, 동녀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동남, 동녀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느니라. 하늘,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 사람, 사람 아닌 이들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다 그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고, 집금강신(執金剛神)으로 제도할 이 에게는 집금강신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느니라.」

 

이 정도면 사실상 내 주변사람이나 내가 의지할 만한 존재들은 모두 관세음보살의 32가지 다른 모습에 해당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천수경>에서 말하는 십일면관세음보살은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 열거한 관세음보살의 32가지 중생 구제의 방편의 모습을 11가지 모습으로 대표해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앞에서는 보관(寶冠)의 중앙에 아미타불의 모습이 있으면 무조건 관세음보살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보관 대신 11가지의 얼굴 모습을 표현한 보살상이 있으면 역시 무조건 관세음보살입니다. 이 11가지 얼굴의 모습은 ‘십일면관음신주심경’(十一面觀音神呪心經)에 명확히 규정되어 있습니다.

 

「앞의 3면은 자상(慈相)인데 착한 중생을 보고 자심(慈心)을 일으켜 이를 찬양함을 나타낸 것이고, 왼쪽의 3면은 진상(瞋相)인데 악한 중생을 보고 비심(悲心)을 일으켜 그를 고통에서 구하려 함을 나타낸 것이다. 또 오른쪽의 3면은 흰 이를 드러내고 웃는 모습인 백아상출상(白牙上出相)으로, 정업(淨業)을 행하고 있는 자를 보고는 더욱 불도(佛道)에 정진하도록 권장함을 나타낸 것이다. 뒤의 1면은 폭대소상(暴大笑相)으로서, 착하고, 악한 모든 부류의 중생들이 함께 뒤섞여 있는 모습을 보고 이들을 모두 포섭하려는 큰 도량을 보이는 것이다. 정상의 불면(佛面)은 대승 근기大(乘根機)를 가진 자들에게 불도의 구경(究竟)에 관하여 설함을 나타낸 것이다.」

 

이것이 경전에서 설하고 있는 십일면의 모습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실제로 우리나라에 탱화건 부조(浮彫)건, 이 십일면관세음보살상이 아주 귀하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그 유명한 석굴암 주불(主佛) 후면 벽에 양각으로 조각된 십일면관세음보살상으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는 석굴암에서 이 십일면관세음보살상을 올려다보며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환희삼매에 젖어 본, 운 좋은 사람 중 하나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인도 성지순례만 하고 오면 ‘부처님의 숨결이 하염없이....’, 고명한 스님들까지도 ‘자신의 출가를 되돌아 볼 기회....’ 운운하시는데, 그때의 제 감동을 떠올리면 석굴암에서도 충분히 그와 같은 감회를 느낄 수 있으므로 제 정서에는 잘 맞지 않습니다.
십일면관세음보살처럼, 또 관세음보살의 32응신처럼 내 눈에 띄는 것, 내 생각 자체가 관세음보살이고 부처님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선 느끼지 못하고 먼 인도에 가서 새삼 느끼는 것은 좀 그렇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