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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

제대보살諸大菩薩, 본사 아미타불本師 阿彌陀佛

나무 제대보살 마하살 南無 諸大菩薩 摩訶薩
모든 보살님께 귀의합니다

 

제대보살諸大菩薩

여기서 제대보살이란, 이런 이름의 보살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諸)’라는 말은 ‘일체의’ ‘모든’ 이라는 뜻이고, ‘대’(大)는 ‘크신’ ‘성스러운’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위에 열거한 보살마하살 말고도 존재하는 모든, 이름을 가진 큰 보살들을 ‘제대보살’이라고 총칭하여 귀의 한다는 의미입니다. 실은 ‘마하살’ 자체에 크고 위대하다는 ‘大’의 뜻이 함축되어있으니, 그저 ‘나무제보살마하살’이라고 하더라도 격식에 어긋나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천수경은 여기까지 관세음보살과 일체의 보살께 신명(身命)을 다해 의지할 것을 다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미타불께 귀의하게 됩니다.

 

 

나무 본사 아미타불 南無 本師 阿彌陀佛
보살의 근본이신 아미타불께 귀의합니다

 

본사 아미타불本師 阿彌陀佛

우선 아미타불 앞에 왜 근본적 스승이라는 뜻의 본사(本師)를 붙였는지에 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아미타불의 협시(挾侍) 보살이라고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아미타불이 주불(主佛)이 되니,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의 ‘스승’격이 아미타불이라고 해석해도 문맥상으로 틀리지 않습니다.

여기서 저는 서두에 말씀드린 아미타불에 대한 해석과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 보려 합니다.

‘아미타불’ 하면 여러분들은 극락정토에 계신 부처님을 가장 먼저 떠올리실 것입니다. 행여 임종(臨終)시나 천도재 등 죽은 이들의 왕생극락만을 위해 존재하는 부처님으로 알고 계신다면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아미타불에 관한 본격적인 경전으로는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 등의 정토 3부경이 있습니다. 이 3가지 경에서 정토(淨土) 불교가 다듬어지고, 아미타염불과 관법(灌法) 수행의 체계가 이루어집니다. 아미타불은 대승불교의 많은 부처 중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아미타’(阿彌陀)라는 이름은 무량수(無量壽), 무량광(無量光)을 의미하는데, 무량수는 싼스끄리뜨어 아미타유스(amit?yus), 무량광은 아미타브하(amit?bhas)를 각각 어원으로, 한자음에 가깝게 음사(音寫) 한 것입니다.

여기서 무량수는 무량한 수명, 즉 한없이 영원한 생명력을 말하는 것이고, 무량광은 빛과 같이 우주 법계 어느 곳이든 걸림 없이 다 가득 차 있는 무량한 공간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시간과 공간적으로 제한할 수도, 가름할 수도 없는 존재가치의 부처님이 아미타불의 본래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경전에는 법장(法藏) 이라는 수행자가 중생을 위한 48가지 원을 세워 10겁(劫)의 수행을 성취하여 얻어진 세계로, 우리가 속해 있는 사바세계에서 서쪽으로 10만억불토(十萬億佛土) 떨어진 극락정토에서 설법을 하고 계신다 고 설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아미타불을 극락세계에 계신 부처님이라는 개념보다 법신불(法身佛)의 관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비로자나불과 같은 의미로 아미타불을 이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한국불교의 정토사상도 재정립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 주장의 원천은 ‘무량수’ ‘무량광’이라는 아미타불의 이름이 함축하고 있는 근원에서 출발한 것인데, 여기는 <천수경>을 해설하는 자리이지 정토사상을 논하는 자리가 아니기에 이 정도에서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